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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장 이완용,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 : KBS1 - 한국사전

제목 독립협회장 이완용,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나? 채널 KBS1 방송 2008년 06월14일
프로그램 한국사전 | 045회 시대 + 조선 + 일제 연대 + 19세기 + 20세기
키워드 이완용,매국노,독립협회,을사늑약,한일강제병합,정미칠조약,내선일체,식민지 테마 + 외교 + 친일파
태그 KBS다큐멘터리 한국사전 2008년작
내용

친일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 그는 한때 독립협회장이었다.
그는 왜 매국노가 되었을까? 을사늑약에 서명하는 순간,  그가 그린 조선의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매국의 이름으로 남은 이완용. 그의 행적을 추적한다!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자, 주변 열강들은 조선에서 세력을 확장하고자 한다. 이에 뜻이 있는 지식인들이 모여 조선이 자주 독립국임을 알리는 독립문을 세운다. 독립문 기공식에서 이완용은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독립을 하면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요. 조선인민이 합심을 못하여 서로 싸우고 해하려고 하면, 구라파에 있는 폴란드 모양으로 모두 찢겨 남의 종이 될 터이다.”
독립협회 창립 위원장이기도 했던 이완용. 그가 을사늑약에 서명하고, 친일 매국노로 변신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완용은 25세에 과거에 급제한다.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익힌 그는 주미공사관에 파견되어 2년간 서기관으로 일한다. 조선에 돌아온 그는 친러파와 연합해 고종의 아관파천을 주도해 최고의 실세가 된다. 그러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한반도 점령을 용인한다. 정치적 고립 상태에 빠진 이완용.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에 도착한다.

을사늑약에 서명한 뒤, 이완용은 조선의 외교권은 힘을 키워 다시 찾으면 된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5년 후, 그는 나라의 통치권을 일본에 완전히 넘겨주는 한일강제병합 문서에 서명한다.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 경찰권을 일본에 넘기고, 의병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한국인 헌병보조원 제도까지 제안하는 이완용. 3.1운동이 일어나자 세 차례나 경고문을 발표. 내선일체와 일본어 교육을 강조한다. 그는 계속해서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적극 협조한다.

정미칠조약과 한일합방 대가로 받은 이완용의 은사금 금액은 25만원. 지금의 50억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각종 하사금 수령과 국유 임대지 무상 수령을 통해 엄청난 차익을 얻은 이완용. 1925년 당시 그의 재산은 600억원에 이른다. 그는 어떻게 이런 큰 부자가 되었을까? 경성제일의 현금 부호라 불렸던 이완용의 축재 과정을 밝혀본다.

1926년 이완용은 죽음을 맞이한다. 일본 순사들의 호위 아래 진행된 그의 장례 행렬은 호사스럽고 화려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았던 이완용. 그러나 역사의 냉혹한 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출처 : KBS1 - 한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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