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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탐사보고 동명 루트를 찾아서 : KBS1 - 역사스페셜

제목 2010 탐사보고 동명 루트를 찾아서 채널 KBS1 방송 2010년 01월16일
프로그램 역사스페셜 | 023회 시대 + 삼국 연대 + BC1세기
키워드 동명왕,주몽,동명성왕,추모성왕,후한서,부여,고구려,시조,철기,탁리국,엄호수 테마 + 부여 + 고구려
태그 KBS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2010년작
내용

- 동방을 밝힌 성스러운 임금, 동명왕 
고구려를 세운 주몽. 삼국사기는 그를 동명성왕이라 칭하고 있다. 
지금껏 우리는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주몽과 동명왕을 동일인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고구려 당대의 광개토대왕비문을 보면 고구려 시조 주몽을 추모성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주몽은 과연 동명왕일까? 
위략과 후한서를 비롯한 중국 고대 역사서에는 모두 동명왕을 부여의 건국시조로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의 건국시조 주몽과 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왕은 별개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주몽이 부여의 건국시조 동명왕으로 불리게 됐을까? 

- 부여, 감춰져 있던 700년의 역사를 밝힌다
광활한 만주를 무대로 700년간 존속한 나라 부여.
잘 알려지지 않은 부여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자세히 나와 있다. 

"(고구려)유리왕은 부여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여...11월에 대소가 군사 5만을 거느리고 침범하다가"
- 삼국사기 유리명왕 14년

"고구려가 마한, 예맥과 연합하여 현토성을 공격하자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에게 2만 병사를 주어 현토성을 구원.."
- 삼국사기 태조왕 69년 

부여는 인구 8만호에 사방 2천리의 강역을 가진 나라로 같은 시기 인구 3만호에 불과한 고구려보다 훨씬 큰 나라였다. 
특히 한반도는 청동기 유물인 세형동검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부여는 철제무기와 마구, 찰갑 등이 출토돼 수준 높은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상당한 군사강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최초 답사 동명의 남하루트를 찾는 대장정 
부여 동명왕에 대한 유일한 단서인 건국신화에는 동명의 출발지로 추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한다. 
 "그가 탁리국에서 남하해 엄호수를 지나 부여를 세웠다" - 논형 길험편 
그렇다면 탁리국과 엄호수는 어디인가? 
역사스페셜 제작팀은 동명이 출발했다는 탁리국과 그의 남하 루트를 찾아 대탐사에 나섰다. 중국 흑룡강성 부유현에서 송화강을 건너 길림까지 3천 킬로미터, 부여를 세우기 위해 동명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 본다.

- 고대국가들의 원류, 부여의 재발견 
고구려 주몽의 건국신화는 부여 동명의 건국신화를 차용하여 부여계승 의식을 대내외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도 성왕 때 국호를 남부여로 칭했으며 가야, 나아가 발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을 부여에서 나왔으며, 동명왕의 후예라고 생각했다. 부여는 우리 고대국가 형성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 출처 : KBS1 - 역사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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