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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비이고 싶다 1586년 다물사리 소송사건 : KBS1 - 역사스페셜

제목 나는 노비이고 싶다 1586년 다물사리 소송사건 채널 KBS1 방송 2010년 09월25일
프로그램 역사스페셜 | 045회 시대 + 조선 연대 + 16세기
키워드 김성일,결송입안,다물사리,이지도,천자수모법,양인,노비,소송 테마 + 신분제
태그 KBS다큐멘터리 역사스페셜 2010년작
내용

- 양반 이지도와 다물사리, 그 소송의 시작
경북 안동의 학봉종택에는 15,000점 이상의 유물이 보관돼 있다. 학봉 김성일이 썼다는 우리나라 최초의 안경을 비롯해 많은 고문서들이 남아있는데, 그 중 오늘날의 판결문에 해당하는 6개의 결송입안이 포함돼 있다. 
조선시대 수령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이 재판의 판결. 학봉은 신속하고 공정한 판결로 명성을 떨쳤는데, 나주 수령 시절에 그가 맡았던 사건 중 하나가 바로 1586년 3월12일 시작된 80대 여인 다물사리와 양반 이지도의 소송이었다.

- 재판의 숨겨진 비밀, 천자수모법!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라고 주장하고, 다물사리는 자신이 성균관 소속 종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왜 이런 엇갈린 주장을 한 것일까? 양인 여성이 노비와 결혼한 경우, 자손들이 노비인 아버지를 따라 그 주인의 소유가 되었다. 이지도 집안의 노비와 결혼한 다물사리. 따라서 이지도 주장대로 다물사리가 양인이라면 그 자손들은 남편의 주인이었던 이지도 집안의 노비가 된다. 
부계 혈통을 지향했던 조선. 그러나 노비소유권에 대해서는 노비들끼리 결혼해 낳은 자손은 어머니의 주인에게 예속된다는 ‘천자수모법’을 적용했다. 그래서 다물사리는 자신이 노비라 계속 주장하며 그녀의 딸과 손자들은 그녀가 속한 성균관에 예속시키려 하였다.

- 물러설 수 없는 두 주장, 투탁과 압량위천
550년 전, 양반이 관의 힘을 빌려 노비를 추적했던 문서가 지난 9월 10일 발견됐다. 노비들은 주인에게 노동력과 재화를 바쳐야 했다. 때때로 그 과중한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가는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재산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 노주들은 인맥이나 공권력을 동원했던 것이다. 도망 외에 노비들이 질곡의 삶을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투탁이었다. 이는 문서 등을 조작해 자신의 소속을 바꾸는 범죄로, 이지도와 다물사리 재판의 쟁점이기도 했다.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성균관 관비로 투탁(投託)했다고 주장했는데, 다물사리는 오히려 이지도가 자신의 호적을 위조해서 양인을 천인으로 삼으려 한다고 (압량위천) 맞섰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 노비의 운명
다물사리가 양인이면 자손들은 이지도 집안의 노비, 다물사리가 성균관비면 자손들도 성균관에 속하는 노비가 되는 상황. 어차피 노비라는 신분 자체는 벗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다물사리가 재판에서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을 보면 같은 노비라 해도 그 입장이 매우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공공기관에 속한 공노비와 개인의 소유인 사노비는 어떻게 달랐을까? 노비들이 부담하는 노동과 재화는 어느 정도였을까? 
조선시대 고문서를 살펴보면 개인 재산을 소유하고, 심지어 노비를 둔 노비도 있었다고 하는데... 1586년에 실제로 있었던 소송사건을 통해 그동안 잘 몰랐던 조선시대 노비들의 삶과 꿈을 엿본다.

* 출처 : KBS1 - 역사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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