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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 한국 - 역사

백제 다시 강국이 되다, 중흥군주 무령왕 : KBS1 - 한국사전
제목 백제 다시 강국이 되다, 중흥군주 무령왕 채널 KBS1 방송 2007년 11월17일
프로그램 한국사전 | 021회 시대 + 삼국 연대 + 6세기
키워드 무령왕,일본서기,백가,고야신립,오경박사,갱위강국 테마 + 백제
태그 KBS다큐멘터리 한국사전 2007년작
내용

- 백제 무령왕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무령왕의 탄생설화가 전해오는 곳은 뜻밖에도 일본의 한 작은 섬. 
일본 규슈 북쪽에 위치한 가라츠시 가카라시마 섬이다. 100여 호가 살고 있는 섬마을 곳곳에서는 무령왕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무령왕이 태어나 처음으로 목욕했다는 우물과, 무령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비석까지 건립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일본서기’에는 무령왕의 탄생설화가 실려 있다! 무령왕의 생전이름은 물론 출생년도까지, 공주 무령왕릉에서 확인된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 대체 무슨 이유로 무령왕은 백제가 아닌 일본의 작은 섬에서 태어난 것일까? 

- 무령왕은 동성왕 피살사건의 연루자?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기습 공격으로 백제 개로왕이 전사하고 한성 백제는 멸망한다.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에서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이 차례로 왕위에 오르지만 모두 의문의 죽음을 맞는데...
이때 마흔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무령왕! 피로 얼룩진 선왕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혼란에 빠진 정국을 수습한다. 그러나 무령왕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다. 무령왕이 왕위에 오른 직후 일어난 반란사건! 그런데 주모자는 바로 동성왕을 죽인 시해범 ‘백가’였다. 그는 동성왕을 시해한 후, 또다시 무령왕에 대해 반란을 시도한 것이다. 더 이상한 일은 백가가 진압군을 이끌고 온 무령왕에 대해 항복했고 무령왕은 순순히 항복한 백가를 처형하고 시신을 강물에 던져버린다. 

-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다! - 고구려 격파와 일본 외교 
국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무령왕의 백제 재건 프로젝트! 그 시작은 잃어버린 백제의 옛 땅을 되찾는 일이었다. 무령왕 재위 12년인 512년, 고구려군의 침입으로 백제 가불성이 함락되자 무령왕은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직접 전장에 나선다. 1만의 고구려 대군 vs. 3천 명의 백제군. 
무령왕은 고구려가 방심한 틈을 타 기습공격으로 대승을 거둔다. 이는 백제의 대내외적 위상에 분기점이 되는 일대 사건이었다. 
무령왕이 이룬 백제의 국제적 위상은 일본에서도 확인된다. 2001년 12월, 일본 천황가에 무령왕 후손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인정한 아키히토 천황. 
그 놀라운 고백은 일본의 역사서인 ‘속일본기’에 근거한 것이다. ‘속일본기’에는 칸무천황의 어머니인 고야신립이 무령왕의 아들인 순타태자의 후손으로 기록되어 있다. 무령왕은 순타태자 뿐 아니라 오경박사를 두 차례나 일본에 파견해 선진문화를 전수한다. 단순한 외교관계가 아니라 일본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 무령왕, 갱위강국을 선포하다 
521년, 무령왕은 재위 20년을 맞아 백제 재건 프로젝트의 큰 획을 긋는다. 
바로 갱위강국 선언! 양나라에 보내는 국서에 백제가 고구려를 크게 격파하고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알린 것이다. 6세기에 제작된 중국의 ‘양직공도’에는 백제 사신의 모습과 함께 무령왕이 보낸 국서의 핵심내용이 적혀 있으며, 그 자세한 내용이 ‘양서 동이열전 백제편’에 실려 있다. 
국제적으로 백제의 이름을 높인 무령왕. 무령왕의 묘지석엔 ‘훙(薨)’자를 쓰는 보통 왕들과 달리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崩)’자가 새겨져 있다. 무령왕은 기울어가는 국운을 다시 일으켜 세운 갱위강국의 위대한 황제로 기억된 것이다.

* 출처 : KBS1 - 한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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