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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2부 소리가 하늘이다 : KBS1 - 한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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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종대왕 2부 소리가 하늘이다 채널 KBS1 방송 2008년 02월02일
프로그램 한국사전 | 030회 시대 + 조선 연대 + 15세기
키워드 세종대왕,종묘제례악,박연,황종음,아악,향악,민요 테마 + 세종대왕
태그 KBS다큐멘터리 한국사전 2008년작
내용

세종. 소리를 바로 세우고자 한다.
절대 음감의 소유자. 단 하룻밤에 종묘 제례악을 작곡했던 대왕 세종.
그는 왜 소리에 매료되었을까? 그가 음악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절대음감 세종, 그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
세종 15년. 박연이 세종 앞에서 편경을 연주할 때였다. 세종이 한 음의 소리를 지적한다.
편경을 살펴보니, 먹줄 선이 덜 갈려 있었고, 때문에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았다.

편경에서 먹줄 두께는 얼마만큼의 차이를 가져올까?
제작진이 국악사를 찾아 실험해 봤다.
먹줄의 하나의 차이는 놀랍게도 반음 10분의 1!
세종은 반음의 10분의 1의 차이까지도 알아내는 절대 음감의 소유자였다.
세자 시절부터 현악기 연주에 능통했던 세종.
그는 하룻밤 만에 종묘 제례악을 작곡하는 등. 천부적인 음악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세종은 이러한 재능을 살려, 국가의 기틀을 잡는 사업으로 음악을 재정비한다.
임금이 음률에 밝아 새로운 음악은 모두 임금이 만든 것인데, 막대기로 땅을 치면서 하루 저녁에 음악을 만들었다.
<세종실록 126권>

▲소리는 나라의 기틀,“소리를 세우라.”
음악 사업의 첫 시작은 ‘기준음’을 찾는 것.
그러나 ‘기준음’이 되는 ‘황종음’을 정하는 것은 중국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우리의 힘으로 ‘황종음’을 찾고자 했다.

‘황종음’은 단순한 음악의 ‘기준음’이 아니었다.
황종음을 만드는 것은 황종관인데, 이때 황종관 의 길이는 황종척이라고 하는 ‘자(尺)’가 된다.
또한 황종관에 들어가는 물의 양은 무게의 기준 이 되었다.
모든 도량형의 기준이 되는 황종음. 이처럼 소리를 바로 잡는 것은, 국가를 바로 잡 는 일의 일환이었다.

▲아악이냐? 향악이냐? 사대와 자주의 사이에서 유교사회에서 음악은 백성 통치 방법 중 하나였다.
조선 초, 혼란한 음악을 정비하고자 한 세종. 이에 박연과 함께 아악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음악을 정리해 나간다.
악은 태평성대인 주나라의 음악을 복원한 것.

<율려신서:좋은 정치와 좋은 음악에 관한 책>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종과 박연 간에는 갈등이 생겨난다.
박연은 계속해서 주나라 음악을 복원하려 했으나, 세종에게는 다른 뜻이 있었다.
음악의 기초를 정비한 뒤, ‘우리의 음악’을 만들고자 한 것.
유교적 이상에 어울리는 아악을 사용할 것인가?
우리의 소리인 향악을 사용 할 것인가?
이것은 세종대 최대논란거리였다.

▲우리의 소리는 백성의 소리.
우리 음악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세종.
세종은 아악정리를 마친 뒤, 백성들의 민요를 채집시킨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종묘제례악을 작곡한다.
국가음악의 위용은 아악에서, 풍성한 음악적 사운드는 당악에서, 조선인의 감성은 조선의 가락에서 따온 새로운 음악.
이것이 바로 세종이 작곡한 종묘제례악이었다.
종묘제례악을 완성된 것은 세종 32년. 죽기 두 달 전의 일이었다.
우리 음악을 세우는 것. 이것이 세종대왕의 마지막 사업이었다.

“세종과 같은 음악적 성과가 동북아시아에는 없습니다. 어느 시대에도 없어요.
세종이 이룬 음악적 성과는 세계적인 것 입니다.“
<송혜진 교수 인터뷰 中>

* 출처 : KBS1 - 한국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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