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마크
맨즈 : 남자포털 - MANZ

다큐 : 한국 - 역사

명분인가 실리인가, 고독한 왕의 투쟁 광해군 : KBS1 - 한국사전

링크  동영상 원본/방송사
* 유튜브 동영상이 없거나 설정차단으로 원본 VOD로 링크 처리합니다.
제목 명분인가 실리인가, 고독한 왕의 투쟁 광해군 채널 KBS1 방송 2008년 02월09일
프로그램 한국사전 | 031회 시대 + 조선 연대 + 16세기 + 17세기
키워드 광해군,영창대군,북인,선조,임진왜란,분조,대동법,강홍립,인조,정묘호란 테마 + 광해군 + 선조 + 외교
태그 KBS다큐멘터리 한국사전 2008년작
내용

재위 15년 만에
왕위에서 쫓겨난 비운의 군주,
광해군 !

그의 죄목은 세 가지였다.

첫째, 동생을 해치고 어머니를 폐했다는 것
둘째, 가렴주구로 백성을 고통에 빠뜨렸다는 것
셋째, 오랑캐(후금)에게 정성을 다했다는 것

그러나 승자의 기록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이 있다!

<광해군에 대한 오해와 진실>

광해군은 형을 해치고 아우를 죽인 패륜군주다?!

광해군 5년, 조정에 일대 파란이 인다.
광해군의 아우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음모가 밝혀진 것.
영창대군은 선조의 유일한 적자(嫡子)였다.

즉위 초 왕위정통성을 얻지 못했던 광해군에게 영창의 존재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북인들은 영창대군을 '화의 근본'이라 칭하며, 그를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지만, 광해군은 한결같이 '영창에 관한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일을 어찌 어린 아이가 알았겠는가. 나는 차마 못하겠다."
그러나 이 역모사건을 계기로 7살의 영창대군은 살해되고, 사건에 연루된 조정 안팎의 서.남인 세력은 일시에 제거된다.

숙적이 사라지면서 권력을 거머쥐게 된 북인 세력.
광해군의 지지기반이었던 이들은 서서히 광해군을 위협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광해군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백성이 도탄에서 울부짖었다?!

"나라의 존속과 멸망이 오진 제군이 적을 죽이는 데 달렸으니
나라를 살리고 백성을 구하라. 힘써 큰 공을 길러라."
<광해군이 의병 김천일에게 보낸 편지 中>

1592년 4월 30일, 임진왜란 발발과 함께 선조와 광해군은 피난길을 떠난다.
비상시국을 맞아 선조는 왕의 권한을 세자인 광해군에게 일부 나눠줘야 했다.
왕의 피난으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때, 광해군은 분조(分朝)를 이끌고 항전활동에 나선다.
전국을 돌며 의병을 모집, 의병들의 훈련과 무기사용 등에 관한 구체적인 사항까지 감독하며 전쟁에 필요한 군사기반을 마련해나간다.
의병활동의 구심점이 된 광해군.
전란으로 불안해진 민심은 이미 그에게 향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광해군의 위세는 더없이 높았다.
즉위 초 광해군의 첫 번째 과제는 조선의 재건이었다.
그는 최초로 대동법을 실시, 폐단이 심한 현물 공납을 중단시키고 1년에 두 번 쌀로 일괄 납부하도록 했다.
이 획기적인 법안은 가난에 지친 백성들을 열광케 했다.

광해군이 배은망덕하여 오랑캐를 정성껏 대우했다?!

"지금 큰소리를 치는 자들은 군사력을 헤아리지도 않고 무리한 의논만을 하고 있는데 그들(후금)과 맞싸우다가 잘못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광해군일기>

명의 파병요청을 둘러싸고 광해군과 대신들은 팽팽하게 맞섰다.
동북아시아의 급박한 정세를 주시해왔던 광해군.
당시 패망의 기운이 짙었던 명에 비해 후금은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대신들은 '임진란 때 구원해 준 은혜는 머리카락을 뽑아 짚신을 삼는다 하더라도 그 만분의 일도 갚기에 부족할 것'이라며 강력하게 명 파병을 주장했지만, 광해군의 생각은 달랐다.
조선의 군병이 약해서 '군대를 보내는 것은 농부를 호랑이 굴에 보내는 것과 같다는 것'.
그러나 명의 조선군 파병은 불가피했다.
광해군이 명분을 세우고도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대명지원군의 총책임자로 강홍립을 파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서장관, 지금으로치면 외교관이었다.
"중국 장수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오직 패하지 않을 방도를 강구하는데 힘쓰라."
명나라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서, 후금에게 패하지 말라고 한 광해군의 속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 때 왕이었던 남자.
왕위에서 쫓겨난 비운의 군주, 광해군

1623년, 광해군은 왕위에서 쫓겨나 계집종에게 '영감'이라 구박받으며 홀로 제주도에서 남은 생을 보낸다.
왕위에 있었던 세월보다도 더 긴 세월, 19년의 시간이었다.
광해군이 폐위된지 5년 만에 조선은 정묘호란을 맞았고, 이후 병자호란으로 청과 치욕적인 군신관계를 맺었다.
인조를 비롯한 반정공신들은 청이 제시한 강화조건을 대부분 수용하고 화친을 맺었다.
광해군의 몰락과 동시에 조선도 더없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광해군의 시대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용 출처 : https://blog.daum.net/cjk4205/15250817

* 출처 : KBS1 - 한국사전
3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 유튜브에서 공유된 동영상입니다. ---
저작권에 문제가 있는 경우 메일 주시면 처리하여 드리겠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